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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너무 하기 싫을 때

"삶은 욕망과 규범의 충돌이다(김두식, 욕망해도 괜찮아, 창비, 2012, 4)." 이런 문장을 읽고 나는 생각했다. 규범과 욕망이 타협하기 위해서, 이드의 욕망을 설득할 수 있는 규범을 제시해야 한다. 나는 나늘 감싸는 따뜻한 아버지를 생각했다. 친아버지가 아니라 나를 모티브로한 아버지의 상상이다. 나는 얼마 전에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내 아들 들은 보기만 해도 눈물이 우러나올 정도로 사랑스럽다. 나는 아들의 욕망이 눈에 보인다. 아들이 욕망하는 것을 이루기위해 울면서 떼를 쓸 때 달래는 방법을 찾았다. 우선은 아주 따뜻하게 안아준다. 그리고 아들이 욕망하는 것을 천천히 말로 되새겨준다. "우리 선이가 동생이 가진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싶구나." 안아주면서 감정이 합쳐지고 말로 함께 되새겨보면서 생각이 결합된다. 동생이 가지고 놀더라도 얼마 안있다가 싫증을 내고 다른 장난감을 가지고 놀거니까 좀만 기다리거나 다른 장난감과 바꾸자고 해보라고 설득한다. 그런데 지금 힘으로 뺏으면 앞으로 계속 혼자 놀게 될 수도 있는데 혼자놀면 재미없지 않겠냐고 물어본다. 아들이 규범을 받아들이고 울었던 감정을 정리하는 짧은 시간이 걸린다. 대부분의 규범은 연속된 시간에서 버티기 위해 존재한다. 우리는 연속된 시간에서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이어가야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욕망과 규범의 충돌은 타인이 있고 관계가 있기 때문에 성립된다. 어른이 되면 욕망과 규범의 충돌이 훨씬 복잡해지지만 천천히 생각해보면 위의 과정으로 수렴한다. 그래서 주어진 일이 하기 싫어서 미칠 것 같을 때는 나의 욕망을 친절하게 설득하는 과정을 생략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래서 굳이 없는 아버지의 상을 떠올려 달콤한 것을 욕망하는 나를 천천히 설득한다. 그리고 그 달콤한 일들이 생산보다는 소비에 가깝다는 것을 일깨워 본다. 인간은 너무 복잡한 동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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